4년 전엔 어땠을까


4년 전, 2004년 10월 5일, 시청광장에서 경찰추산 10만명의 보수단체의 시위가 있었다.

당시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1. 조갑제씨의 의견


참으로 재미있다. 4년 전 시민들의 시위는 역사가 움직인 날이고,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 대우하지 않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현재의 촛불시위에 대한 이분의 태도는, 굳이 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원하신다면 조갑제닷컴에 가서 보시라.





2. 집회참가자

....저 인원이 10만이면 촛불시위에 모인 인원은 2~30만 쯤 되겠구만.-_-;;;; 참고로 저 10만은 경찰 추산이다. 촛불시위에 기껏해야 2만이 모인다는 이야기하고, 뭔가 셈법이 달라졌나?






3. 이날 시위에 대한 정치권 반응

아무리 봐도 지금 열우당(현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태도가 서로 다르다. 이거 무슨 역할극이냐? 정권을 잡냐 안잡냐를 기준으로 서로 역할 바꾼 거야?

그리고 "왜 정권퇴진까지 나왔는지 인식해야 한다" 면서, 이제와서는 "임기제 대통령에게 퇴진하라는 것은 헌정 파괴" 라고 이야기하시나??



4. 시위에 대한 2MB의 태도
청와대까지 행진하겠다는 정치집단의 집회를 허용해 준 분은 누구? 바로 우리의 위대하신 이명박 대통령 각하이시다. 서울시장이면서 서울시 조례까지 어기면서 시민들의 집회를 허용해 준,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이시다. 그런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뜻을 모르고 촛불시위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경찰청장과 검찰청장은, 누가 임명했을까???




5. 조선일보의 사설
그렇다, 촛불시위 역시 지난 100여일 간의 현 정권의 태도가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냈다. 국민에게 소통이 부족했다면서 고개를 숙인 대통령이 촛불시위를 향해서는 "더 이상 국민을 불안케 말라" 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정권의 이중적 태도가 '경제 걱정'세대를 계속 거리로 내몰게 될지 모른다.

....이미 4년 전에 조선일보는 예상한 모양이다. 정부가 잘못하면 시민들이 계속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by 레드진생 | 2008/06/30 20:15 | 창문 | 트랙백(9) | 덧글(19)

왜 나는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이들을 까고 싶을까



0.

세상 어디에나 다양한 목소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번 촛불시위를 두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많다. 찬반 양론은 물론 찬반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좋다.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체제다. "국민의 목소리" 라는 단일한 목소리만 존재하는 체제가 아닌, "개개인의 제각각 다른 목소리" 가 있어야 한단 이야기다. 고로 개인적으로 좌우의 구분은 유감스럽다. 나는 특정 사안에 있어서는 좌파이고 (ex:의료보험 민영화, 부동산보유세 강화) 특정 사안에 있어서는 우파이다 (ex:자본자유화, 부동산양도소득세 완화). 지금의 세상, 행정학적으로 말하자면 폭풍우같은 환경 하에서 특정 이념만을 삶의 지표로 삼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다난하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저 내 생각을 가진 한 개인일 뿐이다.

다만 좌우라는 구분을, 학문적 용어도 아니고 삶의 이념의 이야기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시작된 정치적 용어도 아니고, 그저 한국의 매스미디어가 사용해 온 한국만의 역사적 용법에 따라 본다면, 그리고 현재 촛불집회에 대한 찬반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이에 한정해 나는 좌파다. 그것도 귀중한 시험기간에 이런 글을 쓸 만큼은 정신나간(?) 좌파다.

각설하고, 처음에 말했듯 어떤 사안을 놓고 찬반이 동시에 터져나오는 것은 민주사회의 당연한 결과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무작정 깔아뭉개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태도다. 그런 측면에서 알바, 쿨게이, 좌빨, 촛불좀비, 기타등등 다양한 용어들은 그 글쓴이가 잘못된 태도, 민주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찬성이고 반대고 좀 반성이 필요하겠다.

그런데, 내가 촛불시위에 찬성하는 편이라서인지 모르겠지만, 위에 언급한 표현을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위 우파들의 이야기 중에는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다. 왜 그럴까? 설마 내가 좌빨이라? 그럴 리가. 내가 뭔놈의 사회학 공부를 했다고. 그럼 내가 나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밴댕이 속알딱지(학문적 용어로 파시스트)라서? 헉, 이건 가능성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서서서서서서서설마???

나는 마음이 매우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설마 밴댕이 속알딱지?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나같은 대장부가 절대 그럴 리 없어. 하지만... 설마? 안돼안돼, 이대로는 잠도 못자. 그래, 어디 한번 내가 까고싶은 이야기들에 대해 곰곰히 돌이켜 생각해보자....



1.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대형일간지들의 보도행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나 자신을 위한 변론이 가능하다. 이들은 세력을 갈라 자신에게 편리한 형태로만 보도한다. 정부가 행한 동일 사안을 두고 과거와 현재가 이토록 다르다. 이에 대해 반론을 올렸지만, 여전히 비판할 건덕지는 많다. 이 기사 끝머리에 미국이 캐나다로부터 수입할 때 출생 시기와 개체별 식별표시를 확인하면서 검역.검사를 실시하므로 안전하다고 하는데, 그럼 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소고기를 수입할 때 출생시기와 개체별 식별표시를 확인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처럼 특정 논점을 누락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는 행태는 지금은 물론이요, 과거에도 반복되어온 모습이다. 이후 반복될 이야기이므로 간단히 끝내지만, 이러한 모습을 반복해서 본 학습효과로 인해 대형일간지에 대해 반감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2.

그럼 폭력성을 이유로 촛불시위를 비판하는 글은 어떤가. 아, 이에 대해서도 변론이 가능하다. 일전 이야기했듯 이들은 평가대상을 선별적으로 선택한다. 이들은 촛불집회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작은 것도 크게 비판하고, 이러한 모습이 시위대의 전부인 양 침소봉대하지만,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촛불시위가 이들에 대해 폭력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야기하면서 이들이 촛불시위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그리고 그 피해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외치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이런 집단을 염두에 둔 듯한 "의병이 나설 것이다" 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과연 그들이 폭력성 때문에 촛불시위를 비판하는가 의심이 가게 만드는 대목이다. 폭력성 때문에 촛불시위에 반대한다면, 그보다 더한 폭력성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게 비판해야 하지 않은가. 특히 한나라당은 과거 이러한 집회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고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적인 충정이 가득한 집회는 처음이다. 대통령도 이렇게 많이 온 사람들의 뜻을 알아줬으면 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어째서 과거 청와대 진입을 시도한 이들은 애국적인 충정이 가득한 사람들이고, 지금 청와대 진입을 시도한 이들은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자들인가. 나는 양자의 방식을 굳이 구분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그 이유는 지금의 촛불집회가 헌정 파괴행위라 이야기하는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자기 이익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법 아닌가.



3.

그럼 촛불시위에 대한 진압이 당연하다는 글은 어떤가. 역시 나에게도 할 말이 있다. 이번에 지적할 것은 인과관계의 왜곡이다. 이러한 글에서 그들은 현재의 폭력진압은 촛불집회가 자초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촛불시위가 처음 시작된 것은 5월 2일. 그리고 촛불시위의 폭력성이 나타난 것은 아무리 빨라도 5월 28일 이후. 왜 이 이후인가 하면 이 기사에 따르면 일단 "경찰에 따르면 28일 오후 현재까지 서울 도심 촛불집회에서 불법 폭력사태가 발생한 사례는 다행히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 28일까지 경찰이 연행한 사람은 211명이 넘는다. 그 동안 충돌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참고로 매경의 기사는 삭제되었다. 과연 매경도 부끄럽긴 했나 보다. 그래도 pdf기사는 남아있느니, 확인하고 싶으면 확인을. 단 유료결재가 필요하다)

과연, 인과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촛불시위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코리아나호텔 경복궁담장 전경버스는 부쉈고, 가로수 버팀목과 6.25 사진 전시물과 전경버스는 불태운" 이후에서야 공권력이 폭력진압을 시작했는가? 다시 묻는다. 사건의 선후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그대들은 인과관계를 따짐에 있어 미래의 행동이 과거의 결과를 불러온 것이라고 보는가?
(혹은 현재의 결과가 예상되어서 과거의 행동이 있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초의 폭력진압이 시작되기까지 과연 촛불집회는 어떠했는가? 5월 2일부터 5월 말까지, 근 한달 간의 집회에서는 경찰 스스로가 불법 폭력사태가 발생한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4.

내가 읽고 이건 까야겠다고 생각하는 글들은 위의 세 특징을 가진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이제서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밴댕이만한 속알딱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것 자체에 대해 문제삼지 않는다. 다만 촛불시위에 반대한다면서 왜곡된 태도를 갖는 것에 불만을 가질 뿐이다. 



5.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위에서 내가 까댄 이야기들을 한다고 잡혀가는 것도 아니다. 좋다, 그러니 앞으롣 계속해서 촛불시위를 반대해도 좋다. 찬반은 개개인의 자유다. 이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런 유감도 없다. 그리고, 다양성의 방패 뒤에 숨어 얼마든지 왜곡된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 역시 다양성의 방패 뒤에 숨어, 이러한 왜곡된 태도를 갖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누구의 주장이 더 강력한 힘을 갖는가는, 누구의 주장이 더 많은 동의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물론 선동에 휩쓸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개인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선동을 말리고, 반복하여 수정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다. 하나의 결론이 예정된 것이 아닌, 반복되는 담론이 존재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시장과도 매우 닮아있다. 그리고 나는 신자유주의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신자유주의라는 명목 하에 그 내용을 왜곡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나는 여전히 비판할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말만 하면 다 말인 줄 알어?"

by 레드진생 | 2008/06/29 19:15 | 창문 | 트랙백 | 덧글(4)

쿵푸 팬더 단평




사실, 다 본 뒤에 생각하면, 이만큼 전형적인 스토리라인도 없다.

그래도 보는 두시간 내내 즐거웠고,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감각을 이만큼 훌륭하게 충족시키는 영화도 많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름 즐거운 코믹 센스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영화라고 평가하겠다.

더빙판으로 감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목소리들이 자주 듣던 목소리기인 하나, 영상과의 싱크로는 100%였다. 웬만해서는 자막판보다 훌륭한 더빙판을 찾기 힘들지만, 웬만해서는 자막판이 더빙판보다 낫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될 정도다.
(이만큼 훌륭한 싱크로는, <빨간모자의 비밀>에서 노홍철이 연기한 다람쥐 이후 처음이다)

두 시간 동안 즐겁게 웃고 싶다면,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ps. 씨푸 사부가 가장 귀여웠다.

by 레드진생 | 2008/06/27 12:36 | 책장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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